호흡양도 5. 전초전(2) 총기 자국대로 바랜 벽, 엉망으로 쌓인 상자와 바닥에 널린 쓰레기, 엎어진 총기 보관함······. 이곳은 무기 창고란 이름에 걸맞게 의무실이나 창고나 체단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군사기지의 잔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특히 총기 자국대로 열 맞춰 바랜 벽이나 두 사람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총기보관함이 그...
전초전 1. [군사] 전초전에서 벌이는 작은 규모의 전투. 2. [군사]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기 전에 하는 작은 규모의 전투. 대개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벌인다. 3. [군사] 큰일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호흡양도 4. 전초전(1) 또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제임스가 우리...
호흡양도 3. 다정한 죽음을 바라는 이들(3) 기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최초의 <개>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수 번의 번식이 추가로 일어났다. <개들>의 확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제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
호흡양도 2. 다정한 죽음을 바라는 이들(2) 창우의 눈에 안광이 비치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그의 말이 맞다. 이안은 그날 우리가 넘었던 담의 이음새로도 드나들 수 있지만, 거긴 의무실 바로 앞이고 의무실엔 매일 밤 누군가가 불침번을 선다고 했다. 그것은 곧 불침번을 선 누군가가 나라면 우리를 감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소리가 되고, 그것은 다시 우리가 ...
살해, 자해, 유기 묘사 1부 1 아빠가 죽었다. 정확히는 겁도 없이 침입한 한낮의 강도에게 죽임당했다. 운은 엄마와 함께 아빠의 시신을 보았다. 아빠는 숨이 다 죽은 이불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순간 처음 든 생각은 이 흐물거리는 게 정말로 살아숨쉬던 아빠가 맞는가?란 의문이었다. 아빠의 시신과 솜이 다 죽은 이불은 다를 게 없었다. 단지 아빠의...
언니, 잘 지내요? 마음 같아서는 편지를 늦게 봤다고 하고 싶은데 사실 답장할 말을 고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나는 언니 앞에만 서면 기름이 필요 없는 자동차가 되니까요 나는요 한때 우리의 사랑이 세기의 것이기를 바랐어요 이 사랑이 사서에 적히고 설화로 남고 뭐 그런 걸 원했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죽고 싶단 말에 위로할 줄 ...
1 기껏해야 돋은 지 사흘밖에 안 된 다리에는 아주 좁은 간극을 둔 비늘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바다 밑에서 알음알음 전해지는 설화 중엔 인간이 되어 뭍으로 나간 인어의 이야기도 있지만 설화는 딱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뭍을 향해 헤엄치며 물거품이 되어갔다.’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선대 인어가 뭍으로 나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얼마나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걔는 자주 글을 썼고, 걔의 글엔 내가 자주 나왔다. 나는 걔랑 불규칙적으로 메일을 주고받았다. 얼마나 불규칙적이었냐 하면 두 시간 동안 일 초의 낭비도 없이 서로의 문장을 주고받는 날도 있었고 두 달 동안 서로의 존재를 잊어먹은 것처럼 구는 때도 있었다. 그날이 딱 그랬다. 걔와의 메일은 내가 두 달 전에 보낸 ㅋㅋㅋㅋㅋㅋㅋㅋ에서 멈추어 있었는데, 그 두...
누군가는 이 시대를 재난 문자도 오지 않는 재난이라 일컬었고 그 부름엔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도시는 우스울 정도로 빠르게 몰락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도로 두 시간밖에 안 걸린다는 새로운 지하철도의 개회식을 앞두고 있던 사람들은 고작 두 달 만에 손바닥만 한 라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살해하게 됐다. 미미한 전류가 흐르는 작은 구...
원문 > 물고기는 죽으면 파도가 된대 https://posty.pe/l692re 원문 > 물고기 흉내내기 https://posty.pe/ictucp 오빠의 사인은 익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빠의 사인은 익사가 아니다. 정확하게 오빠는 죽지도 않았다. 오빠는 아주 오래 전에 물고기가 되었다. 물고기가 바다로 회귀한 것을 죽음이라 받아들일 수는 없는...
사랑 사랑, 사,랑 사, 랑 네 사 랑이 나를 죽게 만든다 우리는 왜 구태여 서로의 결핍을 찾아 헤매나 우리는 왜 어리석게도 서로의 유약을 자처하나 왜냐니 그럼에도 우리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럼에도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동정하고 동경하니까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의 언어가 뭉쳐진 별이 있고 그 녹슨 항성 속에서 우리만은 아직 반짝거리므로 그렇다면 그 광채를 간...
주홍색 사랑을 졸여서 영원히 보관할래 허울을 벗기고 알맹이에 입을 맞출래 사랑이 덕지덕지 붙은 볼을 찌르고 절대로 식지 않을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마주대고 도로록 도로록 눈알 굴러가는 소리에 맞춰 눈을 마주보고 주홍색 사랑을 졸여서 만 번의 영겁을 보낼래 토르소에 입술 자국으로 재단된 옷을 입힐래 네 동체의 정중앙을 입술 자국으로 도배할래 그럼 아마도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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